연인지화

앞표지
더 로맨틱, 2017. 10. 23.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지?” “예, 이왕이면 아주 먼 나라로요.” “그래, 언젠가 같이 가자.” “그렇지만…….” “뭐가 문제냐? 또 내가 왜인이라 같이 가기 싫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말을 몰라요. 그곳 말을 모르는데…….” “내가 가르쳐 주면 된다.” 네가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정말로 네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싶다. 그야말로 깨끗한 백지인 널 화사하고 아름답게 물들여 주고 싶어.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구나. 내 나라에 살면서도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살아야만 했던 조선의 여인 은화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허락받을 수 없었던 일본의 황족 히카루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본문 내용 中에서] “저, 이대로 괜찮을까요? 걱정되지 않아요?” “내가 왜?” “저기…… 정혼한 사이라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그래도 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조선말로 오지랖도 넓다고 하지? 네가 지금 누구 걱정을 할 처지인가?” 은화는 히카루의 빈정거림에 마음이 상했지만 고개를 꿋꿋이 쳐들었다. “저도 여자라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 여자라? 네 입으로 그런 말을 하다니 좀 웃기는군.” 슬며시 위아래를 훑어보는 히카루의 눈길에 은화는 가슴께를 누르며 시선을 내렸다. “형편없는 발육 부진이야. 특히 요기는 더욱더.” 어느 결에 바짝 다가와 손가락으로 찌르는 시늉을 하자 은화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아니 벌써 물러나려고? 아까의 그 기백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노, 놀리지 말아요. 자꾸 그러면 나는…….” “걱정 마시지. 널 여인으로 보았다면 벌써 품에 안았을 테니까. 네 하는 짓이 귀여운 데가 있어 그대로 둔 것뿐이야. 알았으면 어서 제자리로 얌전히 돌아가라.” 숨소리마저도 닿을 듯 가깝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긴장해서 쌕쌕거리며 숨 쉬는 모습조차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예뻤다. 일부러라도 차가운 말을 내뱉어 자신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것을 간신히 숨겼다. 하지만 은화는 좀체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가 탄 히카루는 은화의 설익은 산딸기 같은 입술을 확 훔쳐 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아니야, 자칫 쌀이 다 익기도 전에 불을 꺼트리면 곤란해. 내가 가까이만 가면 바들바들 떠는데 익기 전에 따먹어 봐야 무슨 맛이겠어? 흥, 내가 여자 하나 못 구슬린다니, 이거야 그간 쌓은 명성이 울겠군. 뭐, 그래도 어쨌거나 작은 상 하나쯤은 받아도……. “흡!” 은화는 히카루의 차가운 입술이 자신의 입을 덮자 급한 숨을 몰아쉬었다. 또 저번처럼 이상한 짓을 하면 콱 깨물어 주리라 별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꽃봉오리를 다루는 듯이 깃털처럼 부드럽게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사르르 한 장 한 장 꽃잎이 펼쳐지는 것처럼 은화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조금 벌렸다. 달콤한 타액이 입술 너머로 감질나게 흘러 들어오는 느낌에 허리께가 이상야릇하게 간질거렸다. 히카루는 반 장난으로 시작했던 입맞춤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했다. 은화의 여린 입술이 마치 달콤한 덫처럼 느껴졌다. 빠져나가야 하는데 하면서도 좀체 벗어날 수 없었다. 히카루는 자신도 모르게 손길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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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나오는 단어 및 구문

저자 정보 (2017)

이서연 좋아하는 것 : 예쁜 찻잔, 포트넘 앤 메이슨의 아쌈 티, 수제 쿠키 싫어하는 것 : 전쟁에 관련된 모든 것들. 출간작 : 남녀상열지사, 서라벌 낭자와 당나라 건달, 낙인, 격랑 그저 긁적거리는 말 : 같은 사랑 이야기라면 현대물보다 시대물이 좋고, 가급적 옛날이야기일수록 좋다. 아니면, 아주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도 끌린다. 어쩌면 사랑 그 자체가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꿈 같은 존재라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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